의령읍 만상(萬上)마을
예전에 의령이 풍덕면(豊德面)이고 덕실골이 덕곡면(德谷面), 대산 만천지역이 만천면(萬川面)으로 보통 호칭으로는 마내(만내의 받침 니은이 탈락됨)로 불렀던 곳이다. 1913년(대정 2년) 면이동(面里洞)이 대폭 통폐합 정비되면서 일부는 화양면(華陽面)에 편입되었다. 그 뒤 1935년(소화 10년) 일부지역이 의령면으로 편입되고 일부는 상정면(上井面)에 폐합되었는데 이때 화양면은 없어졌고 상정면도 화정면으로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. 원래 마내 웃말로 부르던 동네이고 화양면 시절에는 마내 노촌(□村)으로 불렀다고 한다. 광주 노씨가 들어오기 전에 이(□)씨가 몇 집 살았는데 노씨가 들어와 가세가 늘었고 이씨는 떠났다고 한다. 절먼당이란 곳은 옛날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끓어서 불태워 버렸다고 하며 이 고개를 넘으면 구시골(구룡동을 말함)이고 매봉재를 넘으면 수암으로 통하며 큰골을 지나 산고개를 넘으면 덕실 서남촌으로 이어지는 박령재라고 한다. 뒷갓(뒷산)자락에는 두 채의 재실이 있으며 동네 뒷산 꼭 대기에는 상사바구(상사바위)가 있다. 도랑개새미라는 자연샘이 있는데 새미물을 장복하면 속병이 나았고 목욕을 하고 씻으면 오래된 마목이나 부시럼(부스럼)도 말끔히 나았다고 한다. 동구 밖에 방천둑이 있는데 그 근방논들은 물이 끼이는 곳이라 구릉들(구룡들)로 부르고 있다. 마을 옆에는 노씨문중의 구양재(龜陽齋)와 응산정(鷹山亭)이 있고 그 옆에는 처사 노정훈(□正勳)공과 노대수(□大受)공이 제단비가 나란히 서 있다. 이 동네는 타성바지가 들어와도 결국 떠나고 만다는데 지금도 노(□)씨만 20가구 남짓 살고있다. 그리고 이 동네에서 시집간 분들의 댁호가 여러 가지인데 마내띠기(마내댁), 노촌띠기, 하촌띠기 등으로 불린다고 한다.